[특별칼럼] 사람과의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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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6일(목) 16:19
논설위원 문민용
어느 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서 아무런 욕심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오아시스에는 언제나 시원한 물이 샘솟는 샘이 있었고, 샘물 주변에는 커다란 야자수가 우거져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야자수 열매로 생계를 해결하고, 피곤하면 야자수 그늘에 앉아 샘물로 목을 축이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사막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들이 하나둘 오아시스를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긴 여행에 지친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퍼주는 것을 기쁨과 보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노인의 선행과 함께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있다는 사실이 여행자들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오아시스를 찾는 여행자들이 점점 늘어났고, 언제부터인가 물을 얻어 마신 나그네들이 감사의 보답으로 몇 푼의 동전을 노인에게 건네주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여행자들이 건네주는 동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금고에 돈이 점점 쌓여가자 욕심이 생겨났다. 노인은 돈을 모으는 재미에 빠져 나그네들에게 먼저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제 샘물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였다.

돈을 모으는 재미에 흠뻑 빠져든 노인은 샘물을 관리하는 데 더욱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여행자들이 밀려들면서 샘물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샘물이 고갈되자 노인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 야자수 숲에 누워있던 노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습니다. “그래, 이놈의 야자수 때문이야. 사람들에게 팔 물을 야자수 나무가 모두 빨아들이기 때문이야” 그는 잎이 무성한 야자수가 샘물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오두막에서 도끼 하나를 들고나왔습니다.

그러고는 한둘 야자수를 잘라내기 시작했습니다. 야자수를 모두 잘라버린 노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샘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샘물이 말라 버리는 일은 없겠지” 그러나 샘물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습니다.

얼마 후, 마침내 샘물은 모래 웅덩이만 남긴 채 바싹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야자수 그늘이 사라지고, 샘물이 말라 버리자 아무도 노인의 오두막을 찾지 않았습니다. 노인 역시 그늘도 없는 모래 위에 누운 채 서서히 말라 죽어갔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서 쓸쓸히 죽어간 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막에서 살아가기에, 충분한 그늘과 물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모든 죄에는 한결같이 욕심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권세에 대한 욕심, 성에 대한 욕심 등입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죄의 유혹 구렁텅이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더럽고 추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미국 홀트-룬스타드 교수가 시행한 연구 프로그램에서도 ‘연결이 곧 치유’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사망 위험 요인인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메타 분석 검토>에서 좋은 사회적 관계가 건강에 필수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자비와 인정이 넘치는 사회 환경이 다른 어떤 예방 전략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연구는 금연이나 금주, 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 체중 감량, 고혈압 완화 같은 방법보다 건강한 사회관계가 생명을 연장하는 데 더 큰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 나누는 사회적 교류가 건강과 행복을 여는 열쇠임을 밝힌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측은지심이 있습니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본다면 얼른 달려가 구하려는 마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우정, 공감, 연민, 자비, 환대 등 모두 다 비슷한 마음일 겁니다. 영어로는 컴패션(compassion)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끼리끼리 어울립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측은지심이 발동해서 서로 돌봐주고 보살펴주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돌봄과 보살핌이 필요한 부분은 ‘하층’에게 더욱 많을 겁니다.

마을에서 어려운 그들과도 적극 교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돌봄과 보살핌은 일방적인 것은 아닙니다. 즉 돌봄을 받는 사람은 혜택을 받고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과 보살핌을 통해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고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게도 건강 또는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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